홈
뉴스데스크
엠빅뉴스
14F
정치
사회
국제
경제
연예
스포츠
뉴스데스크
신수아
반란군 박윤관 상병의 죽음‥그날의 대원 "살기 위해서"
입력 | 2023-12-12 20:04 수정 | 2023-12-12 20:13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video.
◀ 앵커 ▶
정선엽 병장의 현충원 묘비 옆에는 고 박윤관 상병의 묘비가 놓여 있습니다.
진압군에 소속돼 있던 정 병장과는 달리 박 상병은 반란군에 소속돼 총격전을 벌이다가 목숨을 잃었는데요.
정치군인의 명령으로 희생이 됐는데도 반란군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명예회복은커녕 가족들마저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수아 기자가 전하겠습니다.
◀ 리포트 ▶
군사반란의 성공을 자축하며 신군부가 샴페인을 터뜨렸던 그 순간.
오열하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전두환 측 반란군에 소속됐다 숨진 박윤관 상병.
[박필관/박윤관 상병 동생(2005년)]
″막 피가 거꾸로 솟죠. 그러니까…우리 식구 형님을 희생을 시켜놓고 자기들은…권력으로 해서 좋다고…어떻게 보면 우리 형님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박윤관 상병은 전두환 측이 육군 참모총장 공관에 투입했던 33헌병대 소속이었습니다.
정승화 참모총장을 연행한 뒤 빈 공관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고 보초를 섰던 박 상병.
공관을 탈환하러 진압군 측의 해병대가 나타나자, 어쩔 수 없이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윤관 상병 바로 옆에서 관통상을 입었던 같은 부대원은 ′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33헌병대원(2005년, 음성변조)]
″우리도 적이 아닌 적군에다가 총을 쏜 거고요. 저쪽 팀도 우리가 적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총을 쏜 거예요.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서…″
박 상병은 숨진 뒤 일병에서 상병으로 1계급 추서됐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20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
박 상병의 아버지는 화병에 시달리다 2년 후 별세했고, 어머니도 아들의 유품으로 그리움을 달래다 201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치군인의 명령에 희생됐는데도 극과 극으로 갈렸던 세월의 평가는 가족들마저 침묵하게 했습니다.
[김준철/김오랑기념사업회 사무총장]
″(박윤관 상병 가족들과 연락한 지) 한 10년 조금 더 된 것 같고 그렇습니다.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처음에는 영웅이라고 했는데 지금 반란군 아니냐 라고…″
김오랑 중령 추모단체는 12.12 군사반란으로 희생된 진압군의 정선엽 병장, 반란군의 박윤관 상병 모두를 추모하는 공동 추모비 건립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신수아입니다.
영상편집: 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