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최유찬

자꾸 우는 김정은 눈물에 담긴 통치술

입력 | 2023-12-09 07:36   수정 | 2023-12-0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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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앞서 보신 북한의 어머니대회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건 김정은 위원장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습니다.

◀ 차미연 앵커 ▶

북한 매체는 이전에도 김정은이 열병식 같은 각종 행사에서 우는 모습을 여러차례 공개했었는데요.

이른바 김정은식 감성통치란 말까지 나옵니다.

◀ 김필국 앵커 ▶

북한이 최고 지도자의 눈물을 이렇게 여과없이 공개하는 의도는 뭘까요?

최유찬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 리포트 ▶

북한 전국어머니대회가 열린 지난 3일.

리일환 당비서의 보고를 듣던 김정은 위원장의 볼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조선중앙TV]
″보고자는 이렇듯 고결한 인생관을 지닌 여성들의 대오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대하여″

다음 장면에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습니다.

평양체육관에 모인 참석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오열을 감추지 못합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정치적인 의미의 동정심 유발이라든가 이런 것도 있을 걸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김정은 같은 경우에도 엄마의 사랑이 많이 좀 부족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있을 거라고 보고 있고요.″

김정은의 우는 모습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선대 떠올리며 눈물</strong>

2011년 김정일의 장례식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김정은은 이듬해 한 음악회에서 화면에 등장한 김정일의 생전 모습을 보며 또 울었고,

2014년 수산사업소를 방문해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회상케하는 언급이 나오자 다시 눈물을 보였습니다.

[조선중앙TV/2014년 11월]
″위대한 대원수님들(김일성·김정일)께 경애하는 원수님이 마련해주신 물고기 대풍을 보여드리고 싶은 절절한 심정을 아뢰며..″

집권 초기 김정은의 눈물은 이처럼 주로 선대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지도자가 되면서 선대에 대한 백두혈통에 대한 강조, 그걸 통해서 주민들에게 백두혈통을 제대로 이끌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내부 결속 강화?</strong>

하지만 집권 10년차를 전후해 어느 정도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한 뒤에는 좀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지난 2020년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김정은은 코로나 방역과 수해복구에 투입된 이들에게 마음 아프다,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울먹였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2020년 10월]
″인민군 장병들이 발휘한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헌신은 누구든 감사의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공개연설 도중 눈물을 흘린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7월 정전협정 체결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도 북한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확실한 리더로서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북한 사회가 계속 균열되고 이탈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내가(김정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좀 나를 좀 지켜봐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순간적으로 나왔을 거라고 봐요.″

김정은은 또 선대로부터 특별한 관계를 이어온 군 원로들이 숨졌을 때 유독 많이 울었습니다.

2015년 리을설 원수나, 얼마 뒤 김양건 당시 통일전선부장이 사망했을 때도 직접 빈소를 찾아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조선중앙TV/2015년 12월]
″(김정은은) 마지막으로 손이라도 한번 따뜻이 잡아보고 보냈으면 이다지 가슴이 허비지(허탈하지)는 않겠다고 하시며″

특히 김정은의 후계 교육을 맡았던 현철해 국방성 총고문이 숨졌을 때는 오열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군 원로들을 각별히 예우하는 모습을 부각하면서 군부의 충성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의도적인 연출을 통해서 북한의 기성세대, 원로 세대와 자신을 연결시킴으로써 충성을 유도하는 전략일 가능성도 있죠.″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김정은식 감성통치?</strong>

북한 매체가 김정은의 우는 모습을 여과없이 공개하는 건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다는 게 공통된 평가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 제왕적 통치방식과 대비되는 이른바 감성통치를 통해 최고 존엄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하며 인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계산된 행보란 겁니다.

과거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됐던 북한의 수령관과 달리 능력의 한계를 자책하며 국정실패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노동당 8차 대회 개회사/2021년 1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했습니다.″

인민을 위한다는 이미지를 극대화하며 주민들에게 고통스런 상황을 솔직히 드러내고 다독이면서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한 의도란 분석도 나옵니다.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이전의 수령이라는 존재 자체는 일반 사람이 아닌 거의 신격화된 수준까지 있었는데 김정은 시기에서는 그것을 깨고 자신들의 이른바 인민 대중 자유주의에 따라서 인민들 북한 주민들을 그만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하는 등 철권통치를 행사해온만큼 김정은의 이런 모습은 악어의 눈물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습니다.

눈물로 자애로운 이미지를 표출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주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각종 법을 제정하는 등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극단적인 극형에 처하는 그런 사례가 더 많아졌거든요. 자유로운 지도자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지만, 실제 통제는 더 가혹해지고 있기 때문에 악어의 눈물의 연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거죠.″

이제 곧 집권 12년 차에 접어드는 김정은.

선대 지도자들과는 달리 눈물을 보이고 자책하고 애민을 외치면서 감성통치는 조금씩 진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실생활 개선 같은 실질적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또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전망대 최유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