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9-20 09:57 수정 | 2022-09-20 15:15
OECD가 <2022년 한국경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2020년 판 이후 2년 만입니다.
OECD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물가와 경제성장률 등 각종 지표에 대한 예상치를 내놓았는데요.
올해 물가 상승률은 5.2%로, 기존 전망보다 0.4%p 더 올려잡았습니다.
국내 총생산 증가율은 0.1%포인트 오른 2.8%로 상향 조정했는데 ″상반기 성과가 5월 추정 대비 훨씬 좋게 나왔고, 3/4분기도 선방할 걸로 보인다.″는 평가였습니다.
문제는 내년입니다.
우선 물가. 내년에도 3.9%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거라고 봤습니다. 국제 유가가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내년까지도 고물가가 지속할 거란 예측입니다.
반면 내년 경제성장률은 직전 전망치 2.5% 대비 0.3%포인트 낮은 2.2%로 제시했습니다. 국제적인 경기둔화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인데요.
실제 수출 증가율 예상치는 많이 감소했습니다.
올해 4.7%, 내년엔 3.2% 증가하는 데 그쳐 10.8%를 기록했던 작년과 비교하면 각각 절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미 무역수지는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적자 행진 중입니다.
아울러 OECD는 생산성 격차가 성장을 저해할 거란 우려도 내놨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촉발한 불평등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겁니다.
OECD는 이런 상황에서 좋은 대학,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안정된 직장을 이른바 ′황금 티켓′(Golden ticket)으로 비유하고, 이 ′황금 티켓′을 잡으려는 청년들의 경쟁은 장기적으로는 후유증을 낳을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기획재정부 보도자료에서 사라진 문장들</strong>
OECD 보고서에는 현 정부와 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와 미래를 위한 제언도 담겼습니다.
재정건전성 강화와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인하, 원전 활용도 제고 등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주요 정책에 대한 코멘트도 포함됐습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OECD는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주요 정책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정책운용에 참고할 예정″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보도자료처럼 긍정적인 평가만 있었을까.
이 정책들에 대한 OECD의 평가를 기재부의 축약형 보도자료가 아닌 OECD 보고서 원문으로 찾아봤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확대 재정이 코로나19 피해 최소화했다.″</strong>
먼저 재정 건전성 강화에 대한 평가입니다.
OECD는 긴축 재정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며 분명 현 정부의 재정정책을 긍정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재정 정책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현 정부가 재정 건전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서두에 전 정부의 재정 정책이
방만했다고 주장한 것과는 사뭇 결이 다릅니다.
OECD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는 코로나 19 확산 기간에 대규모 재정정책을 신속하게 집행했다.
코로나 19 확산 전 정부부채 및 재정적자를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 것이 경기 부양을 위한 막대한 확장재정을 실시할 여력을 제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즉 한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재정 건전성을 잘 유지하고 있었고, 그 덕에 코로나 19 시기 정부가 적기에 확장 재정을 펼칠 수 있었다, 그 결과 가계와 기업에 피해를 덜 끼치고 경제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정부의 부채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라고 봤습니다.
다만 최근 물가 상승 압박과 고령화로 인한 복지 비용 증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긴축 재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재정정책 방향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도 ′확장재정=방만′으로 몰아가는 현 정부의 논리와는 사뭇 다른 유연함이 보이는 대목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OECD, ″정책의 잦은 변경은 지양해야″</strong>
부동산 세제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요.
OECD는 문재인 정부의 양도소득세 인상에 대해 ″다주택자의 부동산 매도 유인을 약화시켰다.″,
종합부동산세 인상에 대해선 ″낮은 수용도와 추가 세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약점을 안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그러면서 ″종부세 개정은 원래 의도대로 주택시장 안정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세금 부담 방식 역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여기까지는 현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개편에 OECD가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기재부가 밝히지 않은 문장이 원문 보고서에는 하나 더 있습니다.
″More generally, however, frequent changes in housing-related taxes and macroprudential policies should be avoided. Frequent policy changes increase volatility, and new policies may not have the intended effect if households expect that the next administration will undo any changes.″
″그렇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볼 때 주택 관련 세금 및 거시건전성 정책의 잦은 변경은 지양해야 한다.
변경된 정책이 다음 정권에서 취소될 것으로 예상하면 기대한 정책 효과도 낼 수 없게 된다.″
즉, 세금 정책을 바꾸는 것은 신중을 기하라는 따끔한 지적입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세금정책도 바뀌면 국민은 정부의 세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기획재정부의 보도자료에는 OECD의 결론에 가까운 이 지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온실가스 감축에 원전 도움‥하지만 신재생에너지 투자도 필요</strong>
현 정부가 강하게 내세우고 있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평가도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원자력과 석탄 동시 퇴출 정책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 가능성은 높고 비용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원전을 강조한 현 정부에 유리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기재부가 보도자료에 싣지 않은 설명이 있습니다.
″A renewed emphasis on nuclear will help, but investments need to be stepped up for renewables, transmission infrastructure and energy efficiency.″
″(온실가스 감축에) 원전에 대한 강조가 도움이 되겠지만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오는 2030년에 원전 발전량을 전체의 32.8% 수준으로 확대하고 신재생은 21.5%로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0월 확정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에 비해 원전은 8.9%p 높아진 반면 신재생은 8.7%p 낮아진 수치입니다.
이에 발맞추듯,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선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3천억 원 넘게 삭감됐습니다.
재정 건전성 확보, 부동산세제 개편, 원전 관련 정책은 현 정부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OECD 보고서 중 현 정부 정책에 유리한 부분을 주로 인용하고 비판에 관한 내용은 빠뜨린 보도자료를 보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부가 앞으로 정책에 참고해야 할 내용은 듣기 좋은 칭찬이 아닌 뼈 아픈 충고 쪽이 아닐까 싶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