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배주환

5·18을 폭동이라 부른 전두환‥단죄도, 사죄도 없었다

입력 | 2021-11-23 19:47   수정 | 2021-11-23 19:48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video.


◀ 앵커 ▶

김영삼 문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로 전 씨가 1심에서 사형, 결국, 무기 징역형으로 감형됐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면을 받은 뒤로는 5.18 을 폭동이라 칭하면서 그야말로 떵떵 거리고 살았습니다.

이어서 배주환 기자입니다.

◀ 리포트 ▶

989년 5공 청문회로 첫 심판대에 오른 전두환씨,

처음부터 반성의 빛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두환 (1989년 12월 ′5공 청문회′)]
″쿠데타였다면 왜 본인이 그 직후 바로 권력을 장악하지 않았겠습니까. 본인은 그 당시로서는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당시 노무현 의원은 명패를 던지며 항의했지만 전 씨는 입장문만 읽고 국회를 빠져나갔습니다.

6년 뒤, 법의 심판을 받게 됐을 때도 그는 정치 탄압이라고 맞섰습니다.

[전두환 (1995년 12월)]
″저는 검찰의 소환 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1심은 사형, 대법원은 무기징역을 확정했지만, 전 씨는 2년 만에 사면됐고, 이때도 반성은커녕 농담을 던졌습니다.

[전두환 (1997년 12월)]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 이후에도 전씨는 5·18을 ′폭동′이라 부르며 끝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2003년 2월, SBS 인터뷰)]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계엄군이기 때문에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학살로 집권하고 폭정으로 정권을 유지했지만 뻔뻔할 만큼 당당했고, 시늉이라도 사죄는 없었습니다.

[전두환 (2008년 4월, YTN 인터뷰)]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대해서는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아놓고″

최근에도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법정 출석은 거부하면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겼고,

[전두환 (2019년 11월)]
(발포명령 내리셨잖아요?)
″내가 왜 발포 명령을 내렸어 발포명령 내릴 위치에도 있지 않은데…″

12·12 40년이 되는 날엔 쿠데타 주역들과 함께 고급 식당에서 기념 오찬을 가져 분노를 샀습니다.

노태우 씨는 아들이라도 5·18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었지만 전 씨는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철저하게 사과 요구를 외면했습니다.

[전두환 (지난 8월)]
(전두환 씨 피해자에게 사과하세요)
″……″

MBC뉴스 배주환입니다.

영상출처 : SBS, YTN/영상편집 : 김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