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상현

남한 이웃과 나눠요 '함경도 명태김치'

입력 | 2023-12-09 07:55   수정 | 2023-12-0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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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겨울을 맞아 김장을 했다는 이웃을 만나기가 예전만큼 쉽지는 않죠?

그런데 얼마 전 남북 출신 주민들이 함께 북한식 김장을 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김장 비용과 장소를 제공한 사람은 한달 전 통일전망대가 만났던 탈북민이었는데요.

약속을 지키게 돼 누구보다 뿌듯해 했다고 합니다.

그 현장 이상현 기자가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지난 10월 말, 남북한 사회통합사례 발표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줬던 탈북 여성.

충북 음성에서 북한 술 제조업체를 운영하며 이웃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로 훈훈한 감동을 줬는데요.

상금 300만원을 타고 특히 기뻐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김성희/북한전통주 제조업체 대표(탈북민)]
″올해 김장행사를 하는데 물가가 올라가지고 김치를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들이 많은데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것(상금)으로 그걸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그 공약 실천의 현장이라 해서 한달 만에 다시 찾아가본 음성의 북한 술 제조업체.

이른 아침부터 고무장갑을 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마당에 펼쳐진 테이블엔 전날 절여 놓은 배추들이 쌓이고, 주방에선 특별한 재료가 숨어 있다는 김장 양념이 막바지 휘젓기에 들어갑니다.

앞치마와 모자도 걸쳐가며 드디어 ′김장전투′ 준비태세 완료.

″되게 이쁜 거 알지?″
″원래 이뻐″

3년 째 이어온 이 ′김장전투′엔 지역 봉사단체에 소속된 탈북민들과 남한 출신인 이웃 주민들이 함께 했는데요.

[김성희/북한전통주 제조업체 대표(탈북민)]
″마을마다 노인 분들에게 갖다 드렸는데 그 다음부터 조금씩 조금씩 스케일이 커지더라고요. 올해는 특히 제가 상금도 받았겠다, 그 돈만 쓰려고 했는데 또 모자라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봉사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다 합쳐서″

탈북민 대다수의 고향인 북한 함경도 방식의 명태 김치가 이번 ′김장전투′의 임무입니다.

″명태를 그냥 넣으면 살이 다 물러져서 양념에 죽처럼 돼서 아예 보이지도 않아요. 그래서 이걸 넣으려면 3일 전에 동태를 가져다가 숙성을 시켜야 돼요. 숙성을 시켜야 쫄깃한 맛이 살아있는 명태 양념이 될 수 있어요.″

그 명태 덕에 칼칼하고 시원한, 이른바 쩡한 맛을 내는 함경도 김치는 탈북민들에겐 잊지 못하는 고향의 맛이고요.

[허선아/탈북민]
″북한엔 김치냉장고가 없잖아요. 바깥에, 여기로 말하면 땅굴이라고 하죠? 김치움이 있는데 거기서 직접 꺼내서 먹거든요. 그러면 되게 시원하고 쩡한 맛이 나면서 맛있어요.″

남한 주민들에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입니다.

[허윤회/이웃 주민]
″남한에서 명태 이런 거 김치에 넣는 걸 전혀 못 봤는데 여기선 명태를 꼭 넣더라고요. 삭혀가지고 같이 버무려서 넣더라고요. 지난 번에 먹어봤는데 냉장고에서 꺼내서 먹으니까 아주 시원한 맛이 나고 개운하더라고요.″

이 북한식 김장행사엔 지역의 단체들도 십시일반 거들며, 팔을 걷어부쳤습니다.

[설상영/중앙노동경제연구원 이사장]
″우리 연구원 단체가 원래 남북통일에 관련된 사업을 주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정착하는데 많은 역할을 해야되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요.″

[홍대희/대한적집사사봉사회 음성지구협의회장]
″우리 지역에 와서 사니까 정착하는데 좀 도움이 되라고. 우리 한민족이잖아요, 그래서 빨리 여기서 정착하며 살게끔 도와주는 거에요.″

양념 버무리기에 속도가 붙으며 함경도 김치라 써붙은 김치통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는데요,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남북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300포기의 김장을 반나절 만에 완성했습니다. 잠시 후 이 김장김치를 전달하기 위해 특별한 곳을 방문한다는데요, 어떤 곳인지 저도 한번 따라가보겠습니다.″

갓 완성된 김치통을 들고 부리나케 찾아간 마을 경로당.

″내가 우리 엄마를 해줘야 되니까, 그래서 우리가 (김치를) 챙겨왔어.″
″아이고, 엄마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여기에다 자꾸 좋은 일을 해서 어떡해?″

하늘에 계신, 또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 생각에 탈북민들은 눈물을 쏟아냈고요.

남한에서의 친정집, 친정 엄마로 여기며 정성 가득한 김치를 가정 먼저 안겨드립니다.

″내년에 또 이 김치 가져올 때까지 아플 거에요? 안 아플 거에요?“
″아프지 말아야지″
″그렇죠? 김치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김장날은 잔칫날이라 했나요?

마을 잔치도 열렸습니다.

갓 담근 명태김치와 푹 삶아진 돼지고기 수육.

제철 맞은 굴, 게에 북한식인 꼬리떡까지.

탈북민들이 하나씩 준비해온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습니다.

″김장철이면 배추가 많잖아요? 그래서 엄마들이 생배추국을 끓여서 국수에 말아서 이렇게 먹는 습관이 있어요. 그래서 그대로 한 거에요 한번 맛보시라고.″

[유광명/탈북민]
″(우리 탈북민은 혜택을) 많이 받고 왔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요.″

남북의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며 ′작은 통일′을 이룬 김장 날.

[이다은/탈북민]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고 대화를 해가면서 우리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하나가 되잖아요. 그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저는.″

서로가 나누고 즐기고 보듬어준, 모두가 행복했던 하루였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