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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M부스] "마냥 좋아할 수도, 내칠 수도 없는…" 통합당의 윤석열 딜레마

입력 | 2020-08-08 09:00   수정 | 2020-08-08 09:10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통합당에서 출마한다고요?″</strong>

- ″지금 지지율이 잘 나오고 있긴 하죠. 이쪽에선 1위긴 한데.. 그게 참 뭐랄까.. 그렇다고 그냥 출마할 수 있나요? 그 분이 뭐라도 해야죠.″ (통합당 TK 의원 A)

TK(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한 미래통합당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지율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마냥 좋아할 수도,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는 딜레마. 이를 두고 윤 총장이 정치를 하려면 ′뭐라도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 ″(뭐라도 하라는건 사과를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렇죠. 사과가 됐든 해명이 됐든 당원들에게 ′그 때의 일′에 대해서 뭘 하긴 해야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통합당에서 출마한다면 당원들이 받아줄 수 있을까요?″ (통합당 TK 의원 A)

이 의원이 언급한 ′그 때의 일′이란 보수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국정농단 수사를 말합니다.

당시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윤 총장이 박근혜 정부 주요 인사들을 줄줄이 사법처리한 데 대한 앙금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며 문재인 정권과 각을 세우는 모습, 그로 인해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야권 후보 중 1위까지 오른 현상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좋긴 한데, 애증이랄까요. 구원이랄까요.

TK 지역 당원들에게 ′미래통합당 대선 후보, 윤석열′은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카드인가 봅니다.

한 친박 의원도 MBC와의 통화에서 ″현재 윤 총장의 지지율은 본인이 뭘 해서 오른게 아니라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핍박받는 모습때문에 얻은 것 뿐이고, 그런 걸로 나라의 지도자가 되느냐 안되느냐를 따지는 자체가 웃기는 얘기″라며 윤 총장 지지율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윤석열 본인 의사에 달려있다″</strong>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밖의 사람′인 윤 총장의 지지율 상승이 그리 싫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통합당 대선 후보로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자, ″본인 의사에 달려있다″고 답했는데요.

현직 검찰총장으로서는 아니지만, 민간인 윤석열은 통합당 대선후보로 받아 줄 가능성을 열어둔 겁니다.

최근 실시된 한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지율은 13.8%로 범야권 후보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2%에서 5%대에 머물고 있는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등 야권 잠룡들과도 큰 격차를 보였는데요.

통합당 내 분위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원내로만 보면 초선 의원들이 전체 103명의 절반이 넘는 59명이나 돼, 상당수가 윤석열 총장과 애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최근 윤 총장 본인이 정치인들이나 쓸 법한 ′독재′, ′전체주의′같은 과격한 정치적 수사를 써가며 반(反)문재인 지지층을 열광시키고 있고요.

그러면서 윤 총장은 자의든 타의든 여의도까지 영향을 끼치는 반(半)정치인이 돼 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고구마 화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진중한 언행을 이어가고 있는 이낙연 의원이 윤 총장에 대해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이니까 말이죠.

′본인 의사에 달려있다′는 꽃놀이패 형국이 되어서 일까요?

올해 초 언론사의 지지율 조사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해달라고 했던 것과 달리, 윤 총장은 이젠 지지율 발표에도 별다른 거부감을 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통합당은 이익집단. 지지율 1위면 누군들…″</strong>

미래통합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통합당의 성격을 ′이익집단′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통합당 주류의 무게중심은 이익이 되는 쪽으로 언제든 옮겨갈 수 있고, 당 내 인사든 외부 인사든 그가 과거에 뭘 했든 ′일단 이기고 보자.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 기본 정서라는 얘깁니다.

- ″우리는 민주당처럼 이념집단이 아니에요. 민주당에서 어떤 후보가 과거 DJ나 노무현 대통령을 부정했던 전력이 드러나면 그쪽은 난리가 날겁니다. 절대 못받아주죠. 그런데 통합당은 달라요. 지지율 1위 후보고 당선 가능성이 있으면 과거 흠결이 좀 있더라도, ′다 옛날 얘긴데,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넘어가는게 우리 정서에요. 지금 거대여당이 이렇게 무도하게 하는 상황에서 정권을 되찾을 수 있다면 뭘로 문제를 삼겠어요?″ (통합당 핵심 당직자 B)

통합당은 역대 선거에서도 시장의 변화, 민심과 여론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될 사람을 중심으로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는데요.
원조친박이었다가 지금은 ′배신자′ 낙인이 찍힌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 ″(그럼 유승민 전 의원도 받아줄 수 있나요?) 통합당 후보로요? 당연히 가능하죠. 우리는 이익집단이라니까요. 지지율 1위만 되면 ′배신자′ 이런거 다 없어질껄요. 단, 그 분이 본인 지지율을 20% 이상은 만들어서 와야죠. 지금 지지율로는 안되죠.″ (통합당 핵심 당직자 B)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추대? 경선? 사퇴?…아련한 반기문의 기억</strong>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지지율이 한 때 40%에 육박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야를 통틀어 단연 1위였고, 당시 새누리당은 반 전 총장을 영입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고, 새누리당 지지율과 함께 반 전 총장의 지지율도 급전직하 떨어졌습니다.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자,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바른정당조차도 반 전 총장에게 후보 추대가 아니라 당내 경선에 참여하라고 종용했고, 결국 반 전 총장은 보수정당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귀국 3주 만에 쓸쓸히 정계를 떠났습니다.

반기문 후보의 전철을 밟지 않고, 통합당이 윤석열이라는 이름으로 결집하려면, 윤 총장의 지지율은 지금의 13%보다 더 올라야 합니다.

앞으로 더 오르지 못하거나, 밑으로 빠지게 되면 이익에서 멀어져 과거 반기문 후보처럼 바로 내쳐질 수 있습니다.

- ″윤석열도 지지율 떨어지면 끝이죠. 이익집단인데 지지율 빠진 사람한테 매달릴 이유가 없는거 아니에요? 또 13%로는 좀 부족하죠. 아무리 이익집단이라도 13%는 성에 안차지.″ (통합당 핵심 당직자 B)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약 1년 7개월.

′당 밖의 사람′인 윤 총장이 혼자 잘 나가고 있지만, TK 저변에 깔린 복잡다단한 정서를 달래줄 묘안도, 지지율이 급격히 빠질 경우 이를 대체할 플랜B도 통합당엔 아직 없습니다.

마냥 좋아할 수도 내칠 수도 없는 통합당의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습니다.